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라르 울리에 (문단 편집) === 리버풀 === 1998년 7월, 울리에는 [[리버풀 FC]]의 레전드인 [[로이 에반스]]와 함께 공동 감독으로서 리버풀을 이끌게 된다. '공동 감독'이라는 보기드문 일이 벌어진 것엔 이유가 있었다. 로이 에반스는 전임 감독 [[그레이엄 수네스]]가 망쳐놓은 팀을 잘 수습하고 컵 대회를 우승하여 클럽에 활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리더십이 부족하여 선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스티브 맥마나만]], [[로비 파울러]] 등 주축 선수들은 훈련에 빠지는 일이 많았으며 머리, 여자, 클럽 등에 관심을 가졌다.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가리켜 당시 영국에서 대인기였던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를 본따 '스파이스 보이스'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그래서 이사회는 유스들을 잘 통제하여 기량을 터트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울리에에게 선수 관리를 맡겼다. 하지만 로이 에반스를 경질하기엔 레전드를 홀대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그 또한 붙잡아둔 것이다. 이리하여 울리에는 선수 훈련, 관리 등을 맡고 에반스는 경기 지휘를 맡는 공동 감독 체제가 성립되었다. ||[[파일:external/static.guim.co.uk/Liverpools-joint-managers-005.jpg|width=100%]]|| || 공동 감독 시절 에반스와 울리에. 한 눈에 봐도 사이가 안 좋아보인다.(...) ||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공동 감독 체제는 리버풀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두 사람은 팀 운영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권한을 내세우며 대립했다. 두 사람이 어찌나 대립했는지, 식사도 따로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듯 두 감독이 자리 다툼을 했으니 성적이 제대로 나올 리 있나? 리버풀은 공동 감독 체제에서의 4개월 동안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급기야 UEFA 컵에서 두 수는 아래로 평가받았던 셀타비고에게 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1998년 11월 [[토트넘 핫스퍼]]에게 홈에서 3:1로 패한 뒤, 로이 에반스는 자진 사임했고 울리에는 비로소 리버풀의 정식감독으로 부임했다. 울리에는 팀의 리빌딩을 위한 5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스파이스 보이스'라는 조롱을 받는 선수들의 정신상태를 바로잡고 유스들을 키우는 데 전력을 다했다. 1999년 여름, 울리에는 [[폴 인스]], [[데이비드 제임스]], 제이슨 맥디어, 롭 존슨, 토니 워너, 그리고 스티브 할킨스를 방출했고 리버풀의 레전드였던 [[스티브 맥마나만]]마저 자유계약으로 보내버리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울리에는 방출한 선수들의 빈자리를 유스들로 채웠다. [[사미 히피아]], [[디트마어 하만]], [[블라디미르 스미체르]], 산데르 베스터벨트, 티티 카마라, 에릭 메이저, 그리고 [[지미 트라오레]] 등이 이 시기에 리버풀에 입단했다. 또한 리버풀의 훈련장인 멜우드가 이 시기에 완공되었다. 그리고 [[스티븐 제라드]]가 이 시기 유스에서 1군으로 올려져 무궁한 기회를 부여받으며 성장했다. ||[[파일:external/img.thesun.co.uk/77_hou_1479966a.jpg|width=100%]]|| || [[UEFA 유로파 리그|UEFA 컵]]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는 울리에 || 리빌딩은 2000년에도 계속되었다. 2000년 여름, 울리에는 [[마르쿠스 바벨]], 닉 밤비, 페기 아르펙사드, [[에밀 헤스키]], 개리 맥칼리스터, 크리스티안 지게를 대거 영입했다. 반면 데이비드 톰슨, 필 바브, 도메니크 마테오, 스티브 스탄턴, [[브래드 프리델]] 등을 방출했다. 이러한 리빌딩 작업은 2000-01 시즌에 성공을 거두었다. 리버풀은 이 시즌에 리그에서 3위를 기록했고 리그 컵, FA컵, 그리고 UEFA 컵을 모두 우승하며 미니 트레블을 이룩했다. 또한 울리에 개인으로서는 미니 트레블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1년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과 [[UEFA 올해의 팀]] 감독 부문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맨유 팬들은 1999년 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를 싹쓸이한 정식 트레블을 기록한 자신들에 비하면 리버풀이 거둔 미니 트레블은 별거 아니라며 '미키마우스 트레블'이라고 조롱했다.[* 2000-01 시즌에 리버풀이 기록한 미니 트레블이 맨유의 잉글랜드 최초 정식 트레블에 비하여 가치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나 그럼에도 절대로 쉬운 업적은 아니다. 당장 리그컵과 FA컵 우승은 빡빡한 EPL 리그 일정과 병행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두 대회 동시 석권도 절대 쉽지 않으며, 거기에 UEFA컵 우승도 챔피언스 리그에 비해 하위격 대회지만 엄연히 유럽의 강팀들 다수가 참가하는 유럽대항전 대회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승하기가 쉽지 않은 대회이다. 이런 요인들로 리버풀의 미니 트레블은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10월, 울리에는 리즈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지휘하고 있던 도중 하프타임 때 심장발작을 일으켰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그는 당시 은퇴까지 고려했지만 필 톰슨 코치의 보조를 받으며 잔여 시즌을 무사히 치뤘고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래 최고 순위인 2위를 기록하며 고대하던 리그 우승을 곧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파일:external/static.guim.co.uk/Gerard-Houllier-Aston-Vil-006.jpg]] 그런데 심장발작을 겪은 뒤의 그는 사람이 달라졌는지 그때까지 쏠쏠하게 잘하던 영입 분야에서 큰 실책을 연이어 저지르고 만다. 2002년 여름, 울리에는 이른바 '프랑스 커넥션'으로 불리는 영입을 단행했다. 그는 천만 파운드에 랜스로부터 [[엘 하지 디우프]]를 영입했고 세단으로부터 500만 파운드에 살리프 디아오를 영입했으며 릴의 선수 브루노 셰루를 400만 파운드에 영입했다. 반면 리버풀로 임대되어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니콜라 아넬카]]를 원 소속 팀인 PSG로 되돌려보냈다. 훗날 제라드는 자서전에서 아넬카를 내보내고 엘 하지 디우프에게 공격수 자리를 맡긴 것은 울리에의 최악의 실수였다고 비판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가 영입한 '프랑스 커넥션'들은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특히 엘 하지 디우프는 팀의 공격수를 맡은 주제에 첫 시즌에 29경기 3골만 기록했고 두 번째 시즌엔 33경기 0골을 기록하는 위대한(...) 성적을 거둔데다 허구헌날 타팀 관중에게 침을 뱉고 훈련은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온갖 말썽을 저질렀다. 또한 울리에는 팀의 주축인 미드필더 게리 맥칼리스터와 스트라이커 야리 리트마넨을 처분해놓고 그들을 대체할 선수를 구하지 못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영입정책의 참담한 실패는 성적에 악영향을 끼쳤다. 2002-03시즌, 리버풀은 초반 12경기에서 8승4무로 선두를 독주했지만 곧바로 11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충격적인 부진을 겪었고 결국 최종전 단두대매치에서 첼시에 패해 5위로 떨어져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또한 울리에는 유스 정책에 있어서도 거센 비난을 받았다. 울리에의 유스 정책은 기본적으로 프랑스 위주로 이루어졌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그는 감독 인생을 시작한 이래 프랑스 리그에서 줄곧 일했기에 그가 아는 선수들은 대부분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는 'B급'이라 평가받는 선수들을 무턱대고 영입했고 그 중 몇몇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실패했다.(...) 심지어 멘탈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월드컵에서 활약했다는 이유로 영입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영입한 선수가 바로 위에서 설명한 엘 하지 디우프다.(...) 결국 울리에는 팬들의 신임을 잃었고 2003-2004 시즌에 4위를 기록하며 챔스에 진출시켰으나, 라이벌 맨유보다 13점이나 밀리고 우승팀 아스날과는 25점차나 뒤처졌다. 이에 따라 팬들이 격노해 연습구장에 스프레이로 "울리에는 에이즈나 걸려라" 같은 비난 문구로 도배했고, 팀 관계자들이 그를 옹호하느라 진땀을 뺐다. 울리에 본인도 "우리 전력상 4위 정도면 잘한 거 아니냐"며 버티다가 팬들의 분노가 더해지자, 팀은 마음을 바꾸고 그를 쫓아냈다. 리버풀에서의 그의 활동에 대한 리버풀 팬들의 의견은 호불호가 매우 크게 갈린다. 옹호하는 팬들은 제라드와 오언 등 팀내 유스들을 잘 키우고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여 컵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거머쥐고, 무엇보다 2000-01 시즌 미니 트레블을 달성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비판하는 팬들은 2002년 이후 그의 실책으로 팀의 전력이 약화됐고 오언에 너무 의존한 채 70~80년대나 통할 전술을 계속 고집하는 바람에 결국 리그 우승을 거두지 못하고 갈수록 성적이 나빠졌다며 그를 실패한 감독으로 낙인찍었다. 이렇듯 울리에는 리버풀에서 공과가 매우 극명하기에 그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